[수필] 시루떡 한 조각
본문
- 아이구 후니야 천천히 먹어라
이제 5살 된 꼬마가 뭘 그리 떡을 좋아하는지
볼이 터지도록 한입 가득 베어물고는 한참을 우물우물 하고 있다.
- 아이고 너무 크게 잘라주지 좀 말아요. 그러다 목에 걸리면 어쩔려고 그래요.
- 아이 참 괜찮다니까 그래요.
몇 번을 이야기를 해도 들은 척 만척. 뭐라고 하려는 찰나 맞은편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장모님이 눈에 들어온다.
- 그러다 목에 걸리면 진짜 큰일나요. 좀 작게 잘라줘요.
- 내 알아서 한다니까 자꾸 왜그래요?
그래 떡 하나 잘라주는 거 까지 간섭하니 기분이 좋을리가 있을까.
하지만 저건 너무하지 않는가.
애가 지금 볼이 터지도록 입안에 밀어넣고 있는데, 거기다가 떡을 손바닥만하게 잘라주면 어쩌란 말인가.
별수없이 나는 대화를 하면서도 온 신경을 후니쪽으로 보낼 수 밖에 없었다.
그러자 뭐라고 뭐라고 말하고 있던 집사람이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 아니 사람이 말하고 있으면 신경을 좀 쓰던가 이게 뭐하는거야 진짜!
짜증섞인 집사람의 목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내 귀에 희미하게 잡힌 한마디 소리.
- 컥
즉시 나는 몸을 날렸다.
- 꺄악. 쿠당탕
그러면서 의자 몇개가 나뒹굴고 나도 거의 넘어질 뻔 했지만, 그래도 간신히 중심을 잡고 몸을 날려서 후니를 안아들었다.
목을 감싸쥐고 호흡을 못하는 후니.
점점 맘이 급해온다.
목에 걸렸을 땐 어떻게 하라고 했더라.
입을 억지로 벌려서 떡을 다 뽑아 내도 여전히 숨을 못쉬고 있다.
40초 경과
제기랄
혓바닥을 숟가락으로 눌러서 살펴봐도 너무 깊은 곳에 있는지 보이지도 않는다.
50초 경과
이제 아이가 본격적으로 괴로워 하는 것이 느껴진다
제발 오 이런
하임리크를 시도해 봤지만 나올 생각도 않는다
1분 10초 경과
신이시여 제발!!!
그 때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한가지 삽화!!!
즉시 아이를 거꾸로 뒤집어서 땅바닥에 털듯이 확확 내리 꽂아 버렸다.
동시에 아이를 안은 팔에도 힘을 주어 내리 꽂으면서 강하게 북부와 흉부를 압박했다.
그러길 4~5회 외마디 소리가 다시 울려퍼진다
- 컥!!!
땅바닥을 보니 조그마한 시루떡 한 조각이 침으로 범벅이 된 채 마룻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이 보인다.
그 짧은 시간동안에 내 몸과 후니의 몸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핏발어린 눈으로 집사람을 홱 쳐다보며
- 그러길래 내가 떡 작게 잘라 주라고 했어요 안했어요? 지금 애 죽을뻔한거 몰라요?
한마디 쏘아주려고 하자 후니가 이제서야 긴장이 풀린듯 울먹거리면서 안겨든다
- 응 그래그래 후니야 떡 같은거 먹을때는 조금씩 꼭꼭 씹어먹어야 하는거 맞지?
- 네 알았어요
많이 놀란듯 울먹울먹 하면서 숨을 몰아쉬는 후니.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홱 하고 집사람을 쳐다보니 어쩔줄 몰라하는 장모님이 옆에서 쭈뼛쭈뼛 서있는 것이 보인다.
- 아이고 진짜 목에 걸릴줄은 몰랐네
이 소리를 듣고 머릿속에서 뭔가 툭 하고 끊어지는 것이 느껴졌지만 어쩌겠는가.
장모님 계신 앞에서 집사람을 그렇게 또 뭐라할 수는 없는거 아니겠나
간신히 속으로 삼키면서 침착하지만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부탁 아닌 부탁을 해본다.
- 좀 말좀 들어요. 지금 얼마나 큰일이 날뻔 한건지 알겠어요? 나 없을 때 이런일 일어났으면 어쩔뻔 했어요?
- 아 참. 알았다니까요 뭘 자꾸 그래요
아이를 뺏아들다 시피 하면서 다시 방으로 들어가 버리는 집사람의 뒷모습을 멍 하니 바라보면서 생각했다.
다음에는 내가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나는걸까?
아니면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 생기는 걸까?
엉망으로 나뒹굴고 있는 의자와 땅바닥에 있는 시루떡 한 조각만이 조금 전의 일이 진짜라는걸 말해주고 있었다.
우울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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