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학
서양에서 주장했던 파라켈수스의 '약징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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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켈수스
마르실리오 피치노의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을 받았으며, 연금술과 철학, 점성술의 관계를 재설정하였다.
그의 의학 사상은 파라켈수스주의자들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세베리누스,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 얀 밥티스타 판 헬몬트[6] 등이 있다.
1530년 경에 쓰여진 그의 저서 파라그라눔(Paragranum)에 의하면 "의사는 땅 위의 것을 탐구하는 철학, 하늘의 것을 탐구하는 점성술, 그리고 4가지 원소를 다루는 연금술, 마지막으로 의사로서의 덕이라는 이 네 가지 기둥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Alle Ding' sind Gift, und nichts ohn' Gift; allein die Dosis macht, daß ein Ding kein Gift ist."
"모든 것은 독이며 독이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용량만이 독이 없는 것을 정한다."
위의 문장으로 파라켈소스는 "독물학의 아버지"라는 칭송을 얻었으며, 몸에 화학 물질이 들어오는 걸 연구하는 모든 학문은[7]이 말을 학문의 근간이 되는 중요한 진리로 명심하고 있다.
16세기 이후에 등장한, 매독의 수은 치료법이 등장한 것도 파라켈수스의 업적(?). 그 이전까지는 매독 치료제로 남아메리카에서 수입한 유창목이 쓰였는데, 파라켈소스는 이 유창목이 매독 치료제로써는 효과가 없음을 폭로하고 수은이 매독 치료에 효과적임을 밝히려고 하였다. 하지만 유창목 수입 독점권을 쥐고 있었던 푸거 가문의 눈 밖에 나면서, 라이프치히 대학의 의학과 교수진에 의해 수은 치료법이 담긴 책의 출판을 금지시켰던 일화가 있다.
호문쿨루스를 탄생시키려는 실험을 진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광산에서 진료 행위를 하면서 직업병을 최초로 발견해내기도 하였다.
연금술 하면 흔히 떠오르는 황산과 수은에 소금이라는 개념을 첨가하여 3원질설을 주장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리고 일화에 따르면 아조트의 손잡이 끝에는 현자의 돌이 박혀있다고도 하고, 작은 악마가 살고 있기도 하다고 한다. 이 아조트의 검은 교황을 농락했다는 전승도 있다.
독실한 기독교인 가톨릭 신자였지만, 그래도 다른 종교의 우월한 기술에 대하여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다. 무슬림이던 이븐 시나의 의학 서적을 찬양하기도 하고, 유럽에서 잊혀져 사라져가던 고대 그리스 및 여러 유럽 철학 기록을 보관하고 연구하던 이슬람권 철학자들에 대하여 귀중한 자료를 아끼고 남겨주었다면서 매우 고맙게 여겼다.
---- 집은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다. 먹고 자고 떠들고 머무는 물리적 장소가 아니라, 함께 먹고 자고 떠드는 사람들이 있어야 비로소 정의 내릴 수 있는 어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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